은근히 다양한 색상을 시도하는데도 어수선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다. 채도가 낮은 차분한 컬러 위주로 선택하고, 엇비슷한 톤을 함께 매치하기 때문이다. 줄리안이 자신의 집에서 의상을 고르는 장면은, 잘라내서 남자들의 스타일링 가이드 비디오로 삼아도 될 정도다. 그는 흐린 카키색 셔츠 위에 같은 색의 줄무늬가 들어간 회색 타이를, 그리고 푸른 셔츠 위에는 남색 타이를 얹어본다. 심지어는 살인 누명을 쓰고 절박하게 도움을 구하러 다닐 때도 컬러 배합에 대한 집착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염색을 해보라는 권유는 꿋꿋이 거부하고 있는데 이게 다 리처드 기어와 사카모토 류이치, 폴 뉴먼 때문이다. 은발의 매력을 내게 일찌감치 세뇌시킨 이들이다. 물론 그 정도 미남들이라면 백발이 아니라 삭발을 하고도 근사했겠지만, 아무튼 요점은 이렇다. 세월의 흔적이 꼭 고치고 감춰야 하는 핸디캡만은 아니라는 것. 개인적인 의견일 수도 있으나 위에 언급한 셋은 머리카락이 희끗해진 뒤에 오히려 미모의 정점을 찍었다고 본다.